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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 딛고 아시안 연대로' 한인들이 주도

    영원히 흐르는 눈물은 없다. 앨런 아웃렛 총기 난사 사건이 빚어낸 슬픔은 지금 연대로 이어지고 있다. 결속이 눈물을 닦는다. 구심점에는 한인들이 있다.   지난 10일 오후 6시, 한인 일가족의 장례 예배가 진행 중인 캐롤튼 지역 뉴송 교회로 갔다. 캐롤튼 경찰국 소속 경관 10여 명이 나서 교회 인근 도로를 통제할 정도로 추모객이 몰리고 있다.     이 교회 본당은 예배가 시작된 오후 6시부터 만석이 됐다. 교회 측은 추가로 체육관까지 열어 추모객을 맞았다. 생존한 6살 장남 조군도 예배에 참석했다. 조부모 중 한명인 강창호씨가 조사를 맡았다.   장례예배에 온 한 교인은 “아이의 안정을 위해 유가족과 추모객 간의 인사 시간은 갖지 않았다”며 “조군은 다행히 건강해 보인다”고 말했다.   댈러스아시아계미국인역사협회(DAAHS)와 연락이 닿았다.  DAAHS을 창립한 스테파니 드렌카(한국 이름·신경선) 대표는 한인 입양인이다.     DAAHS는 오는 15일 오후 7시 댈러스 지역 유니언 커피 앞 광장에서 이번 총기 난사 사건 희생자를 위한 촛불 집회를 개최하기로 했다. 댈러스 지역 한인 2세를 비롯한 아시아계 청년 수백 명이 모여 목소리를 높인다.   드렌카 대표는 “이번 사건은 텍사스 지역 아시안에게 경각심을 일깨우고 있다”며 “아시안 증오의 역사는 이곳에서도 뿌리가 깊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신문 기사들을 근거 자료로 제시했다. 일례로 댈러스 해럴드(1870년 7월 30일자)는 아시안이 북텍사스의 백인 노동력을 대체한다는 이유로 중국인 입국을 금지해야 한다는 기사를 보도했다.     댈러스모닝뉴스(1889년 10월 31일자)는 세탁소를 운영하는 중국인 업주가 댈러스에서 질병을 퍼뜨린다는 사설까지 실었다.   드렌카 대표는 “역사에 비추어보면 이번 앨런 총기 난사 사건은 아무 원인 없이 발생한 게 아니다”라며 “특히 앨런은 주민 5명 중 1명이 아시아계로 최근 들어 아시안 인구가 급증하던 도시”라고 지적했다.   글쓰기는 그에게 또 하나의 목소리다. 워싱턴포스트, 텍사스 트리뷴, 허핑턴포스트 등 주류 언론에 아시아계 민권을 위한 칼럼을 기고하고 있다. 소수계 등을 위한 온라인 잡지(Visible Magazine)도 창간했다.     분향소가 마련된 댈러스한인회에는 추모객의 발걸음이 이어지고 있다. 방명록을 보니 지금까지 100여 명이 분향소를 찾아 조화를 놓고 갔다. 인근 한인 다수 거주 지역인 캐롤튼시의 스티브 바빅 시장도 이곳을 찾았다.   댈러스한인회 유성주 회장은 “이곳을 찾아 조화를 놓는 것부터가 회복의 시작 아니겠는가”라며 “생존한 아이가 슬픔을 극복하고 나중에 성장했을 때 ‘한인들 모두가 내 가족이었구나’라는 좋은 기억을 남겨주고 싶다”고 말했다.   한인회 박신민 이사는 “아직 구체적으로 밝힐 단계는 아니지만 여러 한인 단체들과 함께 생존자를 돕기 위해 한인회가 준비하는 부분이 있다”며 “주류 사회단체들도 동참해서 함께 힘을 모으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댈러스 한인상공회의소도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상공회의소 이상윤 회장은 “현재 텍사스주의회, 댈러스시, 경찰국 등과 면담을 하며 의견을 전달하고 있다”며 “이번 사건을 계기로 젊은 한인 2세들이 정치권에 진출해야 우리의 목소리를 더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다는 판단에 정치 지망생을 발굴해 주류 사회와 연결하는 작업도 진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증오의 피해가 자아낸 눈물은 그렇게 말라가고 있다. 관련기사 [아시안증오범죄 예방프로젝트] "CCTV보면 한인향해 조준사격 한 것" “누가 죽였는지가 아니라 시대적 맥락서 이유 찾아” 묵살된 정의에 투쟁, 외침 더 커졌다 90년 전 벽화도 예견…미국차 동력은 아시안 41년 전 모터시티에도 정의는 없었다 [중앙칼럼] 증오범죄 대응은 연대와 행동으로 [증오범죄 예방 프로젝트] 침묵하면 악화…아시안 목소리 당당히 내야 [증오범죄 예방 프로젝트] “정치인들 반아시안 발언이 가장 큰 문제” [증오범죄 예방 프로젝트] 한인여고생도 한인 CNN앵커도 "차별 스톱" 110년 전 한인 가족이 증언한 ‘차별의 씨앗’ [아시안 증오범죄 예방 프로젝트] 괴롭힘 당할까 태권도 수강 청소년 ‘2배’ 댈러스=장열 기자 jang.yeol@koreadaily.com아시안 증오범죄 예방

2023-05-12

[아시안증오범죄 예방프로젝트] "CCTV보면 한인향해 조준사격 한 것"

아시안과 혐오의 교점에는 총기가 있다. 명제는 되레 역설을 낳는다. 지난 6일 발생한 앨런 아웃렛 총기 난사 사건이 그렇다.   10일 유명 총포사 ‘웩스 건스(Weg’s Guns)'를 찾아갔다. 댈러스 한인타운에서 북동쪽으로 불과 5마일가량 떨어진 곳이다.   매장 내에는 10여명이 총을 살피고 있었다. 한인도 눈에 띈다. 전성우(46·루이빌)씨는 “앨런 아웃렛 사건의 한인 피해자들과 아는 사이”라고 했다.   전씨는 “지인이 안타까운 일을 당하니까 이제는 도저히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그동안 취미 생활을 위해 총을 샀는데 이번 사건을 계기로 무섭다는 생각이 들어 나를 지키기 위한 총을 구비해 놓기로 했다”고 말했다.   비영리재단 총기폭력아카이브(GVA)에 따르면 현재 전국에 정식 등록된 총기는 3억 정 이상이다. 반면, 불법 총기는 이보다 훨씬 더 많은 4억 정으로 추산한다. 현실적으로 전면 규제는 쉽지 않다.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총기 규제와 자기방어의 논리가 그 지점에서 상충한다.   텍사스한인사격협회(TKSA) 앤드루 오(53·코펠) 회장과 김상훈(48·캐롤튼) 전 회장은 총기 전문가다. 그들을 만나러 파머스브랜치 지역으로 향했다.   TKSA 오 회장은 “팬데믹 당시 아시안 증오범죄가 급증할 때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총을 갖고 다녔다”고 말했다.   김 전 회장은 이번 앨런 아웃렛 총기 난사 사건을 두고 '인종 범죄'에 무게를 두고 있다. 그는 “사건 당시 상황이 담긴 CCTV를 보면 총격범은 차를 멈춰 세우고 한인 피해자들이 걸어가던 화단 쪽을 향해 조준 사격을 했고 문신 등을 보면 나치 사상을 가진 것이 분명하다”며 “언론과 당국이 인종적인 부분을 왜 집중적으로 다루지 않는 것이 의아하다”고 말했다.   실제 텍사스공공안전국은 지난 9일 “총격범인 마우리시오 가르시아가 신나치 사상을 갖고 있으며 이는 그의 서명으로도 확인됐다”고 밝혔다. 그런데도, 당국은 증오 범죄로 규정하는 데는 여전히 미온적이다.   총기 난사 사건 현장인 앨런 아웃렛으로 차를 몰았다. 아웃렛 입구에는 추모 공간이 마련돼 있다. 사건 발생 닷새째인데도 이곳엔 아직도 눈물과 슬픔이 가득하다.   100여 명의 추모객이 침묵 속에서 십자가마다 새겨진 희생자의 이름을 일일이 바라보고 있다. 퇴근 시간과 맞물리는 오후 5시가 넘어서자 추모객의 발걸음이 줄을 잇는다.   아시안을 향한 '모범적 소수계(model minority)'의 폐해는 아이러니하게 총기 사건을 통해서도 엿볼 수 있다.   추모 현장을 찾은 박충근(43·프리스코)씨는 현재 댈러스 지역 한 미국 기업에서 엔지니어로 근무 중이다.   박씨는 “텍사스는 타주와 달리 총기 소유가 보편적이라서 미국인 동료들도 총을 한두 정씩 가진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대화를 나눠보면 아시안은 성실히 일만 하고 대체로 총기를 소유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데 그러한 인식이 때로는 아시아계를 약한 존재로 보며 보이지 않는 무시로 느껴질 때가 있다”고 말했다.   잇따르는 총기 사건은 생명을 앗아가고 있다. 혐오의 과녁이 되면 두려움이 엄습한다. 총기 소유 근저에는 '강 대 강'으로 맞설 수밖에 없는 불가피한 현실이 존재하는 셈이다.   사건 현장에서 남쪽으로 2마일 남짓한 곳에는 세인트주드 가톨릭 성당이 있다. 오후 7시, 앨런 아웃렛 사건 희생자를 위한 특별 미사가 진행되는 그곳으로 갔다. 성당 안은 어린아이부터 노인까지 빼곡하다.   성당 한 관계자는 “800여 명 정도 모인 것 같다”고 말했다.   한인 일가족 등 희생자의 이름이 한 명씩 불릴 때마다 사제들이 초에 불을 켰다. 8개의 촛불은 그렇게 타들어 갔다.   주보 앞면에 적힌 추모 미사 주제 글귀가 선명하다. '평화와 치유(Peace and Healing)'.   증오가 남긴 상처는 그만큼 깊다. 관련기사 [아시안증오범죄 예방프로젝트] "CCTV보면 한인향해 조준사격 한 것" 총기난사 1주기…또 장례 치르는 한인들 “누가 죽였는지가 아니라 시대적 맥락서 이유 찾아” 묵살된 정의에 투쟁, 외침 더 커졌다 90년 전 벽화도 예견…미국차 동력은 아시안 41년 전 모터시티에도 정의는 없었다 [중앙칼럼] 증오범죄 대응은 연대와 행동으로 [증오범죄 예방 프로젝트] 침묵하면 악화…아시안 목소리 당당히 내야 [증오범죄 예방 프로젝트] “정치인들 반아시안 발언이 가장 큰 문제” [증오범죄 예방 프로젝트] 한인여고생도 한인 CNN앵커도 "차별 스톱" 110년 전 한인 가족이 증언한 ‘차별의 씨앗’ [아시안 증오범죄 예방 프로젝트] 괴롭힘 당할까 태권도 수강 청소년 ‘2배’ 댈러스=장열 기자 jang.yeol@koreadaily.com아시안 증오범죄 예방

2023-05-11

총기난사 1주기…또 장례 치르는 한인들

총성은 악몽을 다시 끄집어낸다. 1년 전 오늘(5월 11일)이었다.   당시 댈러스 한인타운 로열레인 선상 ‘헤어월드’ 살롱에서 총기 난사 사건이 발생, 직원 두 명과 손님 등 3명이 총에 맞았다. 〈2022년 5월 13일 A-1·3면〉   사건이 발생한 미용실을 1년만에 찾았다. 2015년부터 헤어월드를 운영해온 장수정씨는 그날의 기억을 묻자 괴로운 듯 입을 쉽게 떼지 못했다.   장씨는 “1년 전 그날을 떠올리면 말을 꺼내기 힘들 정도”라며 “총상을 입었던 직원 두 명은 정신적 충격으로 미용 일을 그만두고 타주로 떠났고 그중 한 명은 지금도 총상 후유증으로 한쪽 팔을 제대로 쓰지 못한다”고 말했다.   당시 범인 제레미 스미스(37)는 무작정 미용실에 쳐들어와 13차례 총격을 가했다. 대낮에 한인 업소 밀집 지역에서 일어난 총기 난사 사건이었다. 기소장에 따르면 아시안에 대한 증오가 범행 동기였다.     그날 이후 장씨는 업소 입구에 붙여뒀던 ‘총기 휴대 금지’ 사인을 곧바로 떼버렸다.   장씨는 “오히려 그걸 붙여놔서 ‘저 업소에는 총이 없겠구나’라는 생각에 총든 괴한이 안심하고 들어온 게 아닌가 싶었다”며 “그날 이후부터는 방어용으로 총을 갖고 들어오는 손님들도 있다”고 말했다.   1년이 지나도 지워지지 않는 악몽은 총성으로 되살아났다. 지난 6일 댈러스 인근 앨런 아웃렛에서 발생한 총기 난사 사건은 침전돼있던 그날의 기억을 다시 한번 휘저었다. 쓰라린 아픔은 장씨의 가슴 속에 깊이 각인돼 있었다.   장씨는 “총기 사건 소식을 듣고 남의 일 같지 않아 너무 마음이 아팠다”며 “더는 생각하고 싶지 않다. 이제는 그만 말하고 싶다”고 했다.   미용실 카운터에는 댈러스 경찰국이 제작한 범죄 발생 시 안전 지침이 담긴 팸플릿 10여 장이 놓여있었다. ‘늘 주의하고, 위급 상황 시 911에 신고하라’는 형식적인 내용뿐이다.   장씨는 “읽어봐도 당국이 이 지역의 치안을 어떻게 신경을 쓰고 관리하는지는 잘 모르겠다”며 “경관들이 놓고 간 팸플릿이니까 그냥 놔둔 것”이라고 말했다.   헤어월드가 있는 로열 레인 길은 한인 은행, 식당, 마켓 등이 즐비한 한인타운의 중심가다. 이곳에는 댈러스 한인사회의 역사가 스며있다.   댈러스 한인상공회의소 이상윤 회장은 “1980년대만 해도 로열 레인 길은 댈러스에서도 성매매 등 각종 범죄가 횡행했던 곳”이라며 “이곳에 한인들이 터전을 마련하면서 범죄율이 급감했고 오늘날 한인타운을 형성하게 됐다”고 말했다.   인근의 로열 레인과 해리하인즈 불러바드 교차로로 향했다. 한국어로 쓰인 ‘로열 레인’ ‘해리하인즈 대로’ 표지판이 내걸린 곳이다. 한인들의 공로를 인정한 댈러스시가 지난 1월 미주한인의 날을 기념해 이곳에 단 이중언어 표지판이다. 이를 계기로 텍사스 주의회는 로열레인 길 지역을 한인타운으로 공식 지정하기 위한 결의안을 통과시켜 이제 주지사의 서명만 남겨놨다.   한인사회의 높아진 위상과 달리 한인들의 심리는 최근 잇따른 총성으로 위축되고 있다. 댈러스한인회 이경철 수석부회장은 “지난해 한인 미용실 총격 사건 이후 총기 사건의 위험성을 피부로 느낄 정도”라고 말했다.   이 수석부회장은 “지난달 한인타운 주점에서 총격 사건으로 한인이 사망했을 때 당국은 댈러스에서 하루에 1건꼴로 총기 사건이 일어난다고 했다”며 “우리에겐 큰일인데 별것 아닌 일처럼 말하더라. 한인타운도 더는 안전지대는 아닌 것 같다”고 전했다.   총성은 여전히 곳곳에서 울리고 있다. 지난 8일 발생한 앨런 아웃렛 총기 난사 사건을 포함, 한인 피해자들도 계속 생겨나고 있다.   적극 발벗고 나서야 할 정치인들은 제 목소리를 내지 않고 있다.   본지는 앨런 프리미엄 아웃렛 총기 난사 사건과 관련, 댈러스 인근 한인 정치인들에게 인터뷰 요청을 했지만 선뜻 나서는 이가 없었다.   댈러스 인근 코펠시의 전영주 시의원 사무실 한 관계자는 “인터뷰가 어려울 것 같다”며 “(앨런 몰 사건 피해자들에 대해) 삼가 조의를 표한다”는 내용의 답변만 보내왔다. 한인 다수 거주 지역인 캐롤튼시의 성영준 시의원은 인터뷰 요청에 답변하지 않았다.     주의회 정치인들도 마찬가지다. 텍사스주 하원 지역사회 안전위원회는 앨런 아웃렛 사건 발생 직후 반자동 소총 구매 가능 연령을 21세(기존 18세)로 상향 조정하는 법안을 통과시켰지만 벌써 겉치레라는 지적이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 댈러스 지역 언론들은 주지사 거부 가능성 등 법안이 최종 통과될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앨런 아웃렛 추모 현장에서 만난 조영준(41·앨런) 씨는 “주지사는 총격범이 정신 이상자라고만 하고, 경찰은 증오범죄 여부도 명확히 규정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억울한 죽음만 매번 발생하고 있다”며 “한인 정치인들조차 뚜렷한 대안 하나 내놓지 못하는데 한인의 관점에서 보면 이런 부분이 바로 소수계가 사각지대에 놓여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가운데 앨런 아웃렛 총기 난사 사건으로 숨진 한인 일가족이 출석했던 캐롤튼 지역 뉴송교회에서는 지난 9일 피해자들을 위한 추모기도회가 진행됐다. 피해자 조모(37)·강모(35)씨 부부와 3세 막내아들의 천국환송예배는 11일(오늘) 뉴송교회에서 진행된다. 공교롭게도 헤어월드 살롱에서 총격 사건이 발생한 지 1년째 되는 날이다.   한인들은 또 한번 눈물을 닦아야 한다. 관련기사 [아시안증오범죄 예방프로젝트] "CCTV보면 한인향해 조준사격 한 것" [증오범죄 예방 프로젝트] “정치인들 반아시안 발언이 가장 큰 문제” [증오범죄 예방 프로젝트] 한인여고생도 한인 CNN앵커도 "차별 스톱" 110년 전 한인 가족이 증언한 ‘차별의 씨앗’ [아시안 증오범죄 예방 프로젝트] 괴롭힘 당할까 태권도 수강 청소년 ‘2배’ 댈러스=장열 기자 jang.yeol@koreadaily.com아시안 증오범죄 예방

2023-05-10

[취재 수첩] '아시안' 이라는 이유만으로…

디트로이트를 떠나기 전날(21일)이다. 디에고 리베라가 그린 벽화 속 마사오 히라타의 모습이 계속 아른거렸다. 디트로이트 미술관을 다시 찾아갔다.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포드 공장에서는 폭격기가 생산됐다. 그곳에서 자동차를 만들던 히라타는 평범한 노동자였다. 그의 손에는 또 다른 기름때가 묻었다. 노동의 본질은 변한 게 없다. 달라진 게 있다면 그의 처지다.   일본계미국인시민연맹(JACL)의 기록을 보면 “당시 연방수사국(FBI) 요원들이 매일 히라타의 출퇴근을 감시했다”는 내용이 있다. 그때의 시대상은 그렇게 히라타를 달리 보게 했다.   1982년 우드워드 애비뉴에서 쓰러진 중국계 빈센트 친도 마찬가지다. 그 역시 제도사로 일하던 평범한 청년이었을 뿐이다. 피사체는 그대로였다. 단, 디트로이트의 분노가 그를 다르게 보도록 몰아갔다.   에밀 길레르모는 하버드대 졸업 후 NBC에서 기자로 활동했다. 아시아계 최초로 NPR에서 뉴스 쇼를 진행한 인물이다. 그는 친을 살해했던 로널드 에벤스를 11년 전에 인터뷰했다. 출장 전 길레르모 기자와 연락이 닿았다. 그에게 에벤스를 만났던 이야기를 들었다.   에벤스 역시 평범한 백인이었다. 법원에 출두하던 그의 사진을 보면 단정하게 양복을 입은 멀끔한 중년 남성이었다. 당시 시대적 렌즈는 에벤스를 통해 악의 평범성을 보게 했다.   길레르모 기자는 “에벤스는 친을 죽인 것이 ‘자신의 인생에서 유일한 잘못’이라고 인정했다”며 “그러나 그 사건은 인종과 아무 관련이 없다는 입장이었다”고 했다.   에벤스는 연방 민권법으로 기소됐다. 책임을 회피하려면 인종적 요소가 작용했다는 점을 끝까지 부정할 수밖에 없었을 터다.   그렇기 때문에 40여 년이 지나도 외침은 잦아들 수 없었다. 오늘날 아시안-아메리칸이 누리는 유산은 외침의 메아리다.   친 사건을 계기로 미국정의시민협회(ACJ)를 조직했던 로랜드 황 교수, 헬렌 지아 기자 등은 그때 모두 30대였다. 그들의 머리는 어느새 희끗희끗하다. 증오의 렌즈를 깨려는 아시안 민권 운동은 그렇게 견고해졌다.        인간사에는 여전히 수많은 사건이 일어난다. 원인은 다양하다. 피해자가 단순히 ‘아시안’이라는 이유로 모든 걸 증오의 범주에서 다룰 순 없다. 정치적 프로파간다로 악용되는 것 역시 경계해야 한다.     자취를 쫓는 것은 그래서 중요하다. 시대적 맥락은 때론 증오를 방증한다. 적어도 디트로이트의 상흔은 그 사실을 지금도 분명하게 말하고 있다.  관련기사 “누가 죽였는지가 아니라 시대적 맥락서 이유 찾아” 묵살된 정의에 투쟁, 외침 더 커졌다 90년 전 벽화도 예견…미국차 동력은 아시안 41년 전 모터시티에도 정의는 없었다 장열 기자 jang.yeol@koreadaily.com아시안 증오범죄 예방

2023-04-27

“누가 죽였는지가 아니라 시대적 맥락서 이유 찾아”

  1980년대 주류 사회에 던져진 질문이다.  ‘누가 빈센트 친을 죽였나?(Who Killed Vincent Chin?)’  르네 타지마 페나 UCLA 교수와 크리스틴 초이 뉴욕대학 교수는 이 물음을 다큐멘터리 필름 속에 담았다. 이 작품은 지난 1989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기록 영화 부문 최종 후보작까지 올랐다. 공동 제작자 중 한 명인 페나 교수(사진)를 인터뷰했다. 그는 현재 UCLA에서 아시안-아메리칸학 교수로 활동 중이다.   -다큐 제목에 담긴 의미는. “빈센트 친을 누가 죽였는지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왜(why)’가 중요했다. 법적 쟁점은 살해 여부가 아니라, 살해 동기였다. 술집에서 단순히 말다툼을 벌이다 발생한 사건이 아니었다. 인종과 증오가 빚어낸 사건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당시 시대적 맥락을 살펴보는 게 중요했다. 거기엔 미국 자동차 업계의 불황, 쇠퇴, 일본 차에 대한 적대적 여론 등의 요소가 있다. 혐오의 환경은 그렇게 조성되고 있었다. 한 집단이 악마화되면 그 안의 사람들 역시 비인간화된다. 이중적인 의미를 담았다.”   -분노는 왜 절제되지 못했나. “에벤스 부자에게 전과는 없었다. 번듯한 직장도 있었다. 그런 이들이 왜 방망이를 들고 친을 찾아다녔을까. 술집 댄서 증언에 따르면 다툼이 불거졌을 때 친은 덩치가 컸던 에벤스 부자에게 몸싸움에서 이겼다. 백인들에게 당시 아시안 남성은 작고, 위축돼있고, 복종적인 존재로 인식됐다. 그러한 고정관념, 시대적 반감, 패배감 등이 맞물리며 분노가 증폭됐을 것이다. 폭력은 다양한 요소로 유발된다. 인종 역시 폭력의 방아쇠가 될 수 있다.”   -지금은 어떤가. “아시아계는 1800년대부터 이곳에 왔다. 당시 아시안은 ‘동료’ ‘시민’이 아닌 값싼 노동력의 공급원 정도로 취급됐다. 이러한 인식이 영원한 이방인, 타자, 급기야 인간 이하의 존재, 폭력의 대상으로까지 이어졌다. 일례로 1871년 LA에서 발생한 학살로 중국인의 10%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1900년대 초에는 인도, 필리핀 이민자들이 도시 외곽으로 쫓겨났다. 인종 폭력은 역사적으로 뿌리가 깊다. 역사를 보면 친의 사건부터 오늘날 인종 관련 범죄들은 사실 전혀 놀라운 일도 아니다.”   -아시안은 집단으로 묶인다. “나의 할아버지는 1906년에 샌프란시스코로 왔다. 배에서 내리자마자 백인들에게 폭행을 당했다. 그들은 일본계인 할아버지에게 ‘칭크’로 지칭하며  ‘중국으로 돌아가라’고 소리쳤다. 그때나 지금이나 백인들은 우리를 구분하지 못한다. 이는 지속적인 차별을 낳고, 불평등을 고착시킨다.”   -어떤 식으로 고착시키나. “아시아는 동아시아, 동남아시아, 남아시아 등 수십 개 민족, 지역 등으로 나뉜다. 매우 이질적이고, 다양성을 가진 인종이다. 게다가 아시안을 ‘모범적 소수계’라는 범주에 묶어두려 하지만, 실제 아시아계 미국인 내에서는 사회, 경제, 교육 등에서 큰 격차가 존재한다. 예를 들어 아시안 하면 하버드 같은 명문대 입학 경쟁을 떠올리지만, 대다수는 일반 칼리지에 다니고 있다. 다수의 아시안 학생을 볼 때 아이비리그의 몇 안 되는 비전형 입학 정원을 얻겠다는 건 우리에게 큰 의미가 없다. 보다 근본적으로 장벽을 없애려는 인식이 필요하다.”   -모범적 소수계의 위험성은. “그 용어가 처음 등장한 건 1950년대였다. 흑인 민권 운동이 본격적으로 일어날 즈음인데 아시아계에 대한 일종의 가스라이팅이었다. 흑인처럼 행진하거나, 요구하지 않고 열심히 일만 하는 이미지로 각인시켰다. 이는 당시 아시아계가 직면했던 높은 빈곤율, 차별 문제를 외면하게 했다. 노동 및 민권 운동에서 아시아계 미국인의 활동을 소극적으로 만들었다.”   -아시아계의 투쟁은. “중요한 건 우리는 매번 ‘피해자’로만 있지 않았다. 처음부터 맞서 싸웠다. 1902년 캘리포니아로 왔던 한국의 도산 안창호 선생만 봐도 알 수 있다. 커뮤니티에서 한인 단체를 설립해서 많은 활동을 하지 않았나. 아시안-아메리칸이 인종차별 등에 맞서 싸우고 다른 소수계와 연대하는 건 오랜 전통이다. 친의 사건 때도 흑인 민권운동가였던 제시 잭슨 목사가 아시안과 함께 목소리를 높였다.”   -앞으로가 중요한데. “빈센트 친의 사건이 전하는 가장 중요한 메시지가 있다. 아시안으로서 불만 표출이 아닌, 정의를 위한 투쟁을 벌였다는 점이다. 백인 우월주의가 폭력, 반감 등만 조장하는 것처럼 불만은 우리에게 공포, 피해의식만 조장한다. 사회를 ‘우리’와 ‘그들’로만 나누는 폐해를 낳는다. 반면, 정의는 포용성과 평등을 담고 있다. 불만이 아닌 정의를 위해 싸우는 건 그래서 중요하다. 이러한 정신이 다음 세대인 아시아계 젊은이들에게 강화되고 있다. 이를 위해 영화를 만들고, 그림을 그리고 책을 쓴다. 어떤 이는 선거에 출마하고, 음악으로 정의를 말한다. 아시아계 민권의 미래를 밝게 본다.” 관련기사 [아시안 증오범죄 예방 프로젝트] 묵살된 정의에 투쟁, 외침 더 커졌다 90년 전 벽화도 예견…미국차 동력은 아시안 41년 전 모터시티에도 정의는 없었다 장열 기자ㆍjang.yeol@koreadaily.com아시안 증오범죄 예방

2023-04-26

묵살된 정의에 투쟁, 외침 더 커졌다

꽃은 시간을 안고 핀다. 1982년 빈센트 친의 억울했던 죽음이 그랬다. 오늘날 꽃핀 유산은 디트로이트 재건의 근간이다.   20일 오후 1시, 펀데일 지역 9가와 우드워드 애비뉴에 있는 빈센트 친의 추모 동판 앞이다. 디트로이트 다운타운에서 북쪽으로 10여 마일 떨어진 이곳은 아시안 민권 운동의 씨앗이 심긴 곳이다.   펀데일시 레일리 콜먼 언론 담당은 “지난 2010년 펀데일 시의회와 미시간주 변호사협회가 함께 세운 동판”이라며 “친 사건으로 인해 이곳에서 아시안-아메리칸의 민권 운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됐고 사법 개혁의 발단이 된 것을 기념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친의 죽음은 시발점이 됐다. 미국정의시민협회(ACJ)가 태동한 곳이 바로 펀데일이다.     미시간대학 로랜드 황 교수는 “법원이 가해자들에게 벌금형을 내리자 우리(아시안)는 격분했다”며 “판결 직후 너나 할 것 없이 펀데일로 모였다”고 말했다.   그때 아시안들은 추모 동판 인근 골든스타 레스토랑에 집결했다. 친이 주말에 웨이터로 일했던 식당이었다. 당시 변호사였던 황 교수를 비롯한 제임스 시모우라(변호사), 헬렌 지아(기자)가 앞장서서 ACJ를 조직했다.   헬렌 지아는 현재 사회운동가로 활동 중이다. 그는 “그때만 해도 아시안은 주류사회에서 보이지 않는 존재였다. 뉴스에서도 제대로 언급되지 않았다”며 “당시 전미변호사협회, 미국시민자유연맹(ACLU)에 도움을 요청했지만, 그들조차 미온적으로 일관했을 정도”라고 전했다.   그럴수록 결집했다. 결속이 연대로 이어지며 확산 조짐을 보이자 주류 언론도 달리 보기 시작했다. 황 교수는 “그때 미시간주의 여러 한인 교회들도 친 시위에 동참했었다”고 회상했다.     친이 쓰러진 우드워드 애비뉴로 향했다. 펀데일에서 남쪽으로 약 5마일 떨어진 곳이다. 친은 당시 맥도널드 앞에서 머리를 가격당해 쓰러졌다. 빈 건물로 방치된 그곳은 황폐함만 남아있다.   황 교수는 “사건의 흔적은 남아 있지 않지만, 그의 죽음은 많은 것을 남겼다”며 “그중 하나가 미국 사법 역사상 처음으로 아시아계 미국인 피해 사건을 연방 민권법을 통해 기소한 것이 바로 친의 연방 재판이었다”고 말했다.   연방수사국(FBI)이 수사에 나섰고, 가해자인 로널드 에벤스는 민권법에 의해 결국 연방 법원에서 25년형을 선고받았다.   환호는 잠시였다. 에벤스의 변호인은 “인종은 살인의 동기가 아니었다”며 즉시 항소했다. 재판은 신시내티 법원으로 이관됐고 결국 가해자는 무죄로 풀려났다.   법은 정의를 묵살했지만, 투쟁까지 멈추게 할 순 없었다.   헬렌 지아는 “정의가 실현될 수 없다면 우리는 최소한 친의 유산이 사라지지 않도록 행동해야 했다”고 말했다.   중국인커뮤니티센터로 발걸음을 옮겼다. 디트로이트에서 북쪽으로 15마일 떨어진 매디슨 하이츠 지역은 신흥 차이나타운이다.   그곳엔 빈센트 친의 그림이 있다. 중국계 2세 화가인 앤서니 리가 지난해 추모 40주년을 맞아 그린 작품이다.   중국인커뮤니티센터 엠마 인 코디네이터는 “지난해 한인 배우 대니얼 대 김도 이 그림 앞에서 사진을 찍었다”며 “친의 죽음이 남긴 의미는 이곳 아시안 2~3세에까지 전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친의 죽음은 사법 개혁으로도 이어졌다. 그때는 판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이유로 피해자 가족은 법정에서 증언할 수가 없었다. 법원은 친의 어머니 릴리에게 에벤스의 선고일조차 알려주지 않았다.     황 교수는 “친의 재판을 계기로 공판 중 피해자 가족이 범죄 피해로 인해 어떤 영향을 받았는지 진술하는 것이 허용됐다”며 “얼마 전 미국 체조 대표팀이 주치의에게 당한 성폭행을 진술했을 때 그들이 행사했던 법적 권리가 바로 친의 사건으로 제정됐던 피해자 진술권이었다”고 말했다.     ACJ는 지난해 ‘빈센트 친의 유산 가이드’도 제작했다. 총 65페이지다. 의미를 나누고 토론까지 할 수 있도록 섹션마다 교육용 질문도 담겨있다. 이 책자는 현재 디트로이트 지역 공립학교 교사들도 사용 중이다.   증오의 벽은 쉽게 허물어지지 않는다. 기억하고 외칠 때 무너진다. 관련기사 90년 전 벽화도 예견…미국차 동력은 아시안 41년 전 모터시티에도 정의는 없었다 장열 기자ㆍjang.yeol@koreadaily.com아시안 증오범죄 예방

2023-04-25

90년 전 벽화도 예견…미국차 동력은 아시안

  디트로이트와 아시안은 불가분의 관계다. 자동차 산업이 매개체다. 벽화도 역사를 증언한다.   18일 오전 11시, 디트로이트 미술관(DIA)으로 향했다. 시간을 거슬러 과거의 모터 시티가 그림으로 담겨있는 곳이다.   미술관 2층 한가운데인 ‘리베라 코트’에 들어섰다. 한눈에 담을 수 없을 만큼 거대한 벽화가 모습을 드러낸다. 1932년 디에고 리베라(1886-1957)가 그린 ‘디트로이트 산업 벽화(Detroit Industry Murals)’다.   1930년대 포드 자동차 공장의 모습이 선연하게 담겨있다. 세로 22피트, 가로 73피트의 대작이다. 당시 노동자들의 역동성을 세밀하게 담으려면 작은 캔버스로는 부족했을 터다.   안내를 맡은 큐레이터가 벽화 하단의 한 인물을 가리켰다.   DIA 플로레스 케어스 큐레이터는 “아시아계인 ‘마사오 히라타’라는 인물이다. 포드 공장의 금형 제작자였다”고 소개했다.   케어스 큐레이터는 “당시 디에고는 공장의 곳곳을 둘러보며 약 8개월에 걸쳐 노동자들의 삶을 그렸는데 모두 실존 인물들”이며 “히라타를 비롯한 벽화 속 흑인, 히스패닉 등은 당시 디트로이트의 자동차 제조 업계가 인종적으로 이미 다양했었다는 점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벽화 앞에 한참 서 있었다. 마사오 히라타의 일하는 모습을 바라보는데 숙연해진다. 오늘날과 달리 아시안이 흔치 않았던 시대다. 그의 손에는 기름때가 묻어 있었다. 디트로이트는 그렇게 세워진 도시다.   부침의 역사는 현재로 이어진다. 디트로이트 다운타운의 컨벤션 센터로 발걸음을 옮겼다. 세계적 규모의 국제 자동차부품 전시회(WCX)가 열리는 중이다.   컨벤션 부스 제작사 비버(Beaver)의 앨런 천 대표는 “디트로이트의 부스 제작 프로젝트는 대부분 한인 자동차 업체의 전시 건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며 “특히 수년 사이 한인 기업의 진출이 활발해지면서 전시 수요 역시 늘고 있다”고 말했다.   자동차의 부품 수는 대략 3만여 개다. 그중 상당수 부품을 한인 등 아시아계 업체가 생산 중이다. 이번 WCX에서만 무려 30여 개의 한인 부품 제조사들이 나섰다.   대영전기 정인규 부사장은 “자동차에 들어가는 모터용 코어를 전문적으로 생산하고 있다”며 “한국 업체들의 모터 코어 생산 기술은 사실상 세계 최고 수준에 이르렀다”고 말했다.   실제 디트로이트를 중심으로 미시간주에는 상당수의 한인 자동차 업체가 뿌리를 내리고 있다. 디트로이트 무역관에 따르면 현재 미시간주에는 LG, 포스코, SK이노베이션 등 64개의 한인 및 한국 회사가 진출했다.   재미한인자동차산업인협회(KPAI)도 있다. 44년째(1979년 설립) 디트로이트의 자동차 산업과 궤를 같이 해왔다. GM, 포드, 도요타 등 유수의 자동차 기업에서 일하는 한인 150여 명이 활동 중이다.   KPAI의 서병옥 회장은 “이제 미국 자동차 업계는 아시아계 회사 없이는 차를 만들기 어려울 정도”라며 “포드나 GM에서 임원급으로 있는 한인도 많기 때문에 아시안을 제외하고 디트로이트의 자동차 산업을 논할 수 없는 시대”라고 말했다.   다운타운에는 마천루가 있다. GM 본사인 르네상스 센터로 갔다. 우뚝 솟은 빌딩은 모터 시티의 상징이다. 가장 높은 곳에 박아둔 파란색 ‘GM’ 표시가 자부심을 뽐내고 있다. 빌딩명처럼 GM은 다시 르네상스를 꿈꾼다.    GM 아리아나 페레이라 커뮤니케이션 담당은 “현재 GM 내 아시아계 직원은 7510명으로 전체 인력 중 8.5%에 이른다”고 말했다.   GM에 따르면 아시안 직원 비율은 2019년(6.8%), 2020년(7.3%) 등 계속 증가하고 있다. 아시아계 직원 5명 중 4명(81%)꼴로 엔지니어 등 핵심 기술 분야에서 근무 중이다. GM 내 아시아계 임원 역시 현재 75명으로 전년(55명)보다 늘었다. 아시아계가 GM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디트로이트는 전환기에 접어들었다. 내연기관차에서 전기차로 변화의 가속도가 붙고 있다.   일본계 회사 ‘히노 트럭’에서 엔지니어로 일하는 강도윤(53)씨는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터졌던 2008년에 이곳으로 왔다. 디트로이트 자동차 산업의 위기와 파산을 지켜봤다.   강씨는 “출석 중인 한인 교회만 봐도 한동안 교인 수가 줄다가 30~40대 젊은 엔지니어들이 유입되면서 다시 늘고 있다”며 “특히 배터리 분야에서는 한인과 인도계 등 아시안이 핵심 인력으로서 기술 혁신을 주도하고 있다”고 전했다.   아시안에 대한 분노가 가득했던 모터 시티는 지금 재건 중이다. 역설적이게도 동력은 아시안이다. 디트로이트의 심장은 다시 고동치고 있다. 관련기사 41년 전 모터시티에도 정의는 없었다 디트로이트=장열 기자 jang.yeol@koreadaily.com아시안 증오범죄 예방

2023-04-24

41년 전 모터시티에도 정의는 없었다

자동차는 디트로이트의 심장이다. 도시의 정체성은 애칭에 녹아있다. ‘모터 시티(motor city)’의 1980년대는 현시대와 닮은 데가 많다. 경제 위기가 고조될수록 분노가 쌓이던 시기였다. 이른바 ‘빅3(GM·포드·크라이슬러)’와 함께 전성기를 구가하던 도시는 순식간에 위축됐다. 쇠락의 기미는 정체성을 흔들었다. 누적된 분노가 임계점에 이르자 표출 대상이 필요했다. 일본 자동차의 미국 시장 점유율이 원인으로 지목됐다. 아시안은 곧 표적이 됐다. 팬데믹 사태로 아시안을 혐오의 과녁으로 삼은 현실과 흡사하다. 지난 17일 미시간주 디트로이트를 찾아갔다. 격했던 증오의 흔적들이 남아있는 곳이다. 자취를 따라 옮겨간 발걸음을 시리즈로 게재한다.   4월임에도 디트로이트에는 진눈깨비가 흩날렸다.   17일 오후 2시, 다운타운에서 북쪽으로 7마일 떨어진 포레스트 론 공원묘지로 향하는 길이다.   차창 너머로 방치된 빈 건물과 주택이 종종 눈에 띈다. 2013년 디트로이트 파산의 상흔이다. 잿빛 하늘과 차디찬 바람이 휑한 골목마다 우울함을 덧칠하고 있다.   묘지에 도착했다. 살을 에는 바람이 우리를 맞는다. 동행한 미시간대학 로랜드 황(72) 교수는 중국계다. 미시간주 법무부 차관을 지냈다. 41년 전 중국계 청년 빈센트 친(당시 27세.사진)의 죽음을 두고 아시아계 민권을 위해 평생을 투쟁해온 인물이다. 그는 친이 묻힌 묫자리를 정확히 기억하고 그곳으로 안내했다.   1982년 6월 19일이었다. 친은 디트로이트 인근 우드워드 애비뉴에 있던 맥도널드 앞에서 자동차 업계의 백인들에게 야구방망이로 수차례 머리를 가격당해 쓰러졌다. 결혼을 불과 일주일 앞둔 날이었다.     그날 친은 술집에서 친구들과 총각파티를 벌이던 중 시비가 붙었다. 친과 일행은 술집 밖으로 피해 나왔다. 상황이 정리되는 듯했지만, 백인들은 사람까지 고용해 친을 뒤쫓았다. 그들은 야구방망이를 들고 친을 따라가 무차별 폭행을 가했다. 경찰이 현장에 출동할 때까지도 멈추지 않았다. 당시 법정에 증인으로 나섰던 경관은 이들이 “마치 홈런을 치려는 듯” 있는 힘껏 휘둘렀다고 증언했다.   빈센트 친 사건은 증오가 증폭된 지점과 맞물려있다. 당시 디트로이트에서는 대량 해고 사태가 이어졌다. 실업률은 10%를 넘어섰다. 모든 원인을 일본 차의 약진 탓으로 돌렸다. 일본 차 불매운동까지 벌어지며 상황이 최악으로 치닫던 시기다.   친을 방망이로 잔인하게 후려친 건 로널드 에벤스와 그의 의붓아들 마이클 니츠다. 에벤스는 당시 크라이슬러의 고위관리자였다. 니츠는 자동차 공장에서 해고당한 직후였다.   42구역, 67번 자리. 무덤 앞에 이른 황 교수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입을 꾹 다문 채 한쪽 무릎을 꿇었다. 묘지의 적막을 가르는 건 바람 소리뿐이다.   황 교수는 “빈센트 친은 그 시대 속에서 증오의 희생양이 되어 억울하게 살해됐다”며 “그는 ‘이건 불공평하다(It’s not fair)'는 마지막 말을 남긴 채 나흘 뒤 숨을 거뒀다”고 말했다.   불공평에 담긴 의미는 무엇이었을까. 친은 단지 '아시안'이었을 뿐이다.   황 교수는 “결혼을 앞두고 있던 그는 죽어야 할 이유가 단 하나도 없었다”며 “왜 자신이 그런 상황에 놓이게 됐는지 아마도 마지막까지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빈센트 친 사건은 본격적으로 아시아계 민권 운동의 도화선이 된다. 피해자 가족의 법정 증언 허용 등 사법 개혁으로까지 이어졌다.           ━   정치권은 혐오 조장, 법정은 살인자 석방     디트로이트 다운타운에서 서쪽으로 10여 마일 떨어진 디어본 지역에는 포드 자동차 공장이 있다. 증오가 촉발됐던 상황이 기록으로 남아있는 그곳으로 차를 몰았다.   포드 공장은 박물관과 함께 운영 중이다. 건물에 들어서니 곳곳에 박물관을 수식하는 글귀가 내걸려있다.   ’미국의 혁신(American Innovation)‘.   모터 시티의 척추로서 자부심이 응축된 문구다. 그런 포드 자동차도 허물의 역사를 자인하고 있다. 포드 박물관 자동차 변천사에는 이렇게 적혀있다.   ’1980년대 소비자들은 다양한 차종 선택이 가능했지만, 미국 자동차 업계는 수익성이 높은 트럭과 SUV 생산에만 집중했다. 그 결과 시장의 대부분을 일본 자동차 기업에 내주게 됐다.‘   장충식 디트로이트 무역관 관장은 “미국에는 그야말로 피맺힌 이야기”라며 “일본 차에 대한 포드의 기록은 그 아픔을 고스란히 보여준다”고 말했다.   단순히 글로만 남은 기록이 아니다. 디트로이트 한인회 이상웅 이사는 1980년부터 이곳에 있었다. 이 이사는 “엄밀히 말하면 아시안에 대한 시기, 질투의 감정이 증오로 이어진 것”이라며 “그 당시 사회가 아시안들의 성공을 부정적 시선으로 바라봤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친을 죽음으로 내몰았던 그때의 모터 시티는 살벌했다. 당시 새내기 변호사였던 황 교수는 포드 자동차 법률팀에서 근무 중이었다.   증오의 형성은 시대적 상황에 따라 반복된다. 일종의 패턴이다. 황 교수는 “지난 몇 년 사이 코로나 발발을 두고 책임 전가를 위해 극단적 혐오와 폭력 등이 아시안에게 향한 오늘날과 유사했던 시기”라고 회상했다.   그는 “위기가 고조되자 정치권 등 곳곳에서는 일본 차를 빌미 삼아 대놓고 혐오를 부추기고 있었다”며 “나 역시 ’아시안‘이란 이유로 포드 자동차 내에서 변호사 정기 모임에 제외되는 등 차별을 당해야 했다”고 말했다.   당시 언론들도 아시아계에 적대적인 여론을 보도한 흔적이 있다.   뉴욕타임스(1982년 3월 21일 자)는 ’디트로이트를 멈추게 한 회사‘라는 제목으로 도요타 등 일본 자동차 기업들의 미국 시장 점유를 우려하는 기사를 냈다.   월스트리트저널(1982년 5월 14일 자)은 ’일본의 경제 침략(Economic Invasion by Japan)‘이라는 자극적 용어를 서슴지 않고 사용했다.     기사에는 “미국이 일본의 경제적 식민지가 될 수 있다는 우려 속에 인종차별 문제가 불거지고 있다”며 “디트로이트 자동차 노조 건물 주차장에는 일본 차 주차 금지 표지판이 세워졌고, 일본 차를 야구 방망이로 부수며, 정치인들은 일본인을 ’노란색의 작은 사람들‘로 지칭한다”고 적었다.   빈센트 친 사건의 재판은 아시안에 대한 혐오가 팽배한 상황에서 진행됐다. 목격자들은 사건 당시 에벤스 부자가 친에게 내뱉었던 욕설을 또렷하게 증언했다.   “너 같은 난쟁이 xx 때문에 우리는 일자리를 잃었어(It’s because of you little MxxxxFxxxx that we are out of work)”.   그럼에도, 법은 인종과 혐오에 기반을 둔 범죄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명백한 살인에도 가해자가 죗값으로 치른 건 보호관찰(3년)과 3780달러(법정 비용 포함)의 벌금이 전부였다.     찰스 카프맨 판사는 에벤스 부자에게 전과가 없고, 이 지역에서 오래 거주했다는 점을 들어 “죄에 따라 벌을 내릴 게 아니라, 범죄자에게 맞는 벌을 줘야 한다. (You don‘t make the punishment fit the crime, you make the punishment fit the criminal)”며 판결의 당위성을 내세웠다.     증오는 정의마저 짓누를 만큼 거셌다. 1980년대 디트로이트의 어두웠던 단면이다. 오늘날에도 그 증오는 여전히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 장열 기자ㆍjang.yeol@koreadaily.com아시안 증오범죄 예방

2023-04-23

[증오범죄 예방 프로젝트] 침묵하면 악화…아시안 목소리 당당히 내야

가주 의회 유일한 한인 정치인인 데이브 민 상원의원(민주, 37지구)은 다양성·다문화가 꽃피운 가주에서 아시안 증오범죄가 빈발한 사실에 “가슴 아프고 슬프다. 그리고 화가 난다”고 말했다. 특히 민 의원은 정치인이 당선되기 위해 아시안 등 특정 인종을 희생양 삼으려는 행태에 분노했다. 그는 “정치인이라면 의도적 표현으로 커뮤니티가 피를 흘리게 해서는 안 된다”며 차별과 증오를 제도적으로 막는 법안 마련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다음은 지난 15일 새크라멘토 의회 사무실에서 민 의원과 나눈 일문일답.   -대중교통 내 증오범죄 실태조사 및 대응 법안(SB 434)을 발의한 배경은.   “아시안 증오범죄가 급증했다. 하지만 대중교통 시설에서 위협행위가 얼마나 자주 벌어지는지 파악이 안 된다. 아시안과 여성, 소수계, 장애인 모두가 대중교통을 안전하게 이용하길 바란다.  각종 증오범죄를 파악한 뒤 대책과 규정을 마련하도록 법안을 발의했다. 많은 아시아계가 ‘고립’됐다고 느낀다.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밖에서 공격당할까 걱정한다. 사람들이 대중교통에서 신변을 걱정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동료들의 반응과 통과 가능성은.   “대부분 법안에 찬성하고 있다. 다만 예산이 가장 큰 관건이다. 대중교통 이용자를 대상으로 욕설과 협박, 폭행을 당한 적 있는지 등 실태조사와 캠페인 광고는 많은 예산이 필요하지 않다. 효율적인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   -아시안 증오범죄 원인과 해결 방안은.   “우선 상원의원으로서 화가 나고 동시에 책임을 느낀다. 아시아계 정치인이 여러분 뒤에 있다는 점을 말하고 싶다. 반아시안 분위기를 조장하는 사람들이 당황스럽고 수치를 느끼도록 해야 한다. 또한 인식변화를 위한 ‘교육’이 중요하다. 한인사회도 4·29 폭동 후 단합하고 여러 커뮤니티와 연대해 목소리를 키웠다. 아시아·태평양계가 함께 논의하고 대응하는 ‘가교’를 만들어야 한다.”   -정치인이 반아시안 정서를 조장하는 이유는.   “그들은 당선을 위해 의도적으로 인종차별 발언을 하면서 ‘희생양’을 찾는다. 커뮤니티가 피를 흘리게 하는 짓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코로나19 대응은 형편없었다. 그래서 ‘차이나 바이러스’라는 말이 나왔다. 요즘 정치권에서도 똑같은 행태가 반복돼 유감이다.”   -증오범죄에 대응하는 구체적인 방안은.   “입법자는 관련 법안 마련에 나서고 있다. 증오범죄 유형을 보면 90%는 인종차별적 발언, 고함, 위협 등의 행태로 엄밀하게 범죄(Crime)로 처벌하기 어렵다. 그래서 커뮤니티가 이런 행태를 용인하면 안 된다. 보수적인 아시아계는 ‘조용해질 때까지 가만히 있자’고 하지만 좋은 자세가 아니다. 우리가 이곳에서 일하고, 아이를 키우는 만큼 커뮤니티 연대를 강화하고, 다문화를 포용하는 분위기를 조성하자.”   -증오범죄를 당하며 소수계라는 무기력함과 분노도 느낀다.     “유대인과 흑인 커뮤니티를 보자. 그들은 힘없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정치력을 발휘할 줄 안다. 한인과 아시아계도 함께 하면 힘을 키울 수 있다. 커뮤니티 및 정치활동을 꺼리지 말아 달라. 머리를 숙이고 있으면 안 된다. 더 큰 안목으로 시, 주, 전국의 (투표 등) 정치에 참여하자. 끊임없이 ‘불만’을 제기해야 한다. 우리가 느끼는 분노를 생산적인 활동으로 활용할 때다.” 관련기사 [증오범죄 예방 프로젝트] “정치인들 반아시안 발언이 가장 큰 문제” [증오범죄 예방 프로젝트] 한인여고생도 한인 CNN앵커도 "차별 스톱" 110년 전 한인 가족이 증언한 ‘차별의 씨앗’ [아시안 증오범죄 예방 프로젝트] 괴롭힘 당할까 태권도 수강 청소년 ‘2배’ 김형재 기자 kim.ian@koreadaily.com아시안 증오범죄 예방

2023-03-23

[증오범죄 예방 프로젝트] “정치인들 반아시안 발언이 가장 큰 문제”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미국의 아시아계는 바이러스 이외의 걱정과 두려움에 시달려야 했다. 이 기간에 일어난 아시안 증오 사건(폭행 등 범죄 포함)의 피해자는 중국계(43%)와 한인(16%)이 가장 많았다.     이는 샌프란시스코에 본부를 둔 아시안 증오 사건 추적단체 ‘스톱AAPI헤이트(Stop AAPI Hate)’의 최근 보고서(Two Years and Thousands of Voices) 내용이다.   한인 2세인 신시아 최 공동대표는 “아시안 차별과 배척의 역사는 사실 새롭지 않지만 팬데믹이 기름을 끼얹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미 1800년대부터 아시안은 백인위주 사회에서 '더럽고 질병을 옮긴다'고 취급받았다. 인종을 이유로 교육이나 주택매매에 제한도 받았다”며 “팬데믹 기간 중국계와 한인이 증오 사건의 주된 피해자가 된 것은 충격적이지만, 아시안 이민 역사의 아픔이 변하지 않았음을 보여주기도 한다”고 말했다.     보고서는 2020년 3월 19일부터 2022년 3월 31일까지 2년 동안 단체가 접수한 증오 사건(incident)과 범죄(crime) 총 1만1467건을 토대로 작성됐다. 단체 측은 조사 첫 주간에만 전국에서 아시아계 증오 사례가 600건, 한 달 만에 1500건이 넘었다고 밝혔다.   증오 사건은 주로 아시안을 향한 욕설, 비방, 위협 등이었고, 증오 범죄는 물리적 폭행 등이다.     특히 아시안 2명 중 1명은 반아시안 정서로 외부활동 시 안전하지 않다고 느낀 것으로 나타났다. 또 3명 중 2명은 증오 사건과 범죄 등의 영향으로 가족과 연장자의 안전을 걱정했다고 답했다. 아시안 학부모 3명 중 1명은 공공장소 또는 등하굣길에 자녀가 차별 또는 증오 피해자가 되진 않을까 마음을 졸였다.   팬데믹 기간 아시안 차별과 증오는 유행처럼 번졌다. 그 결과 증오 사건 또는 범죄를 경험한 60세 이상 아시안 시니어와 일반 피해자 95% 이상은 ‘미국이 육체적 피해 가능성이 커진 위험한 곳이 됐다’고 답했다.   최 공동대표는 아시안 증오 사건이 급증한 요인으로 정치인의 ‘반아시안 정서가 담긴 수사(rhetoric)’를 꼽았다. 그는 “팬데믹 때 대통령은 인종차별 의도가 깔린 표현을 했다. 중국인 등 아시안은 비난 대상이 됐다. 결국 나를 포함한 아시안은 두려움을 느껴야 했다”고 정치인의 반사회적 행태와 무책임을 비판했다.   그는 이어 “선출직 정치인이라면 반중국, 반아시안 등 인종이나 성 차별적 발언으로 공포를 조성해서는 안 된다. 그들은 모든 사람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법안 제정 등 커뮤니티를 우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증오 피해사례 중 혐오 발언, 조롱 섞인 몸짓, 문서화된 표현 등 괴롭힘(Harassment)이 67%로 가장 많았다. 범죄에 해당하는 신체 폭행도 17%나 달했다.  인종 등을 이유로 기피하는 행태 16%, 소셜미디어 등 온라인 증오 9%, 직장 등에서 차별 6%, 공공기물 파손 또는 강도 4%, 서비스 거부 4%로 집계됐다.     사건 발생 장소는 거리, 공원, 대중교통 시설 등 공공장소가 40%로 가장 많았다. 이밖에 마켓 등 비즈니스 가게 27%, 주택 등 거주지 10%, 학교 등 교육시설 9% 순이었다.     최 공동대표는 “공립학교 이민역사 교육 의무화, 사건 피해자의 적극적인 신고, 한인사회 등 아시안 커뮤니티의 체계적인 대응이 반아시안 정서와 증오 사건을 해결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미국의 건국 과정 속의 아픔을 배우고 이해하는 일은 중요하다”며 “‘흑인 노예의 아픔, 원주민 학살, 아시안 배척, 백인 우월주의의 폐해’ 등 결국 특정 인종이 다른 인종보다, 한 개인이 타인보다 우월하다는 인식으로 상대를 업신여기려는 인식이 차별과 증오를 부추겼다. 교육과 성찰을 통해 남을 차별하려는 인식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거듭 당부했다.     관련기사 [증오범죄 예방 프로젝트] 한인여고생도 한인 CNN앵커도 "차별 스톱" 110년 전 한인 가족이 증언한 ‘차별의 씨앗’ [아시안 증오범죄 예방 프로젝트] 괴롭힘 당할까 태권도 수강 청소년 ‘2배’ 김형재 기자 kim.ian@koreadaily.com아시안 증오범죄 예방

2023-03-22

[증오범죄 예방 프로젝트] 한인여고생도 한인 CNN앵커도 "차별 스톱"

지난 12일 샌프란시스코 다운타운 명물 페리빌딩(Ferry Building)에는 한국계·중국계·필리핀계·베트남계 등 500여명이 모여 애틀랜타 스파 총격 참사 2주기를 추모했다. 이날 행사는 중국계 2세들이 주축인 단체 ‘아시안은 강하다(Asians Are Strong · AAS)’가 주최했다. 샌프란시스코는 북미에서 가장 큰 규모의 중국계 커뮤니티가 형성돼 있고 중국출신 이민자들의 차별과 멸시의 역사가 남아 있는 곳이다.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인 올해 행사의 주제는 ‘우리의 시간(Our Time)’. 베이 지역 한인과 중국계 등 여러 아시아계 주민은 아시아계의 정체성과 자긍심을 독려했다. 이들은 애틀랜타 참사 희생자 8명(한인 4명)을 추모하고, 아시안 증오범죄에 맞서 행동에 나서자고 뜻을 모았다.   이날 행사장은 베이 지역 아시안 커뮤니티 단체 홍보부스, 샌프란시스코 검찰의 증오범죄 대응안내 부스, 증오범죄 대응 수칙과 호신술 교육단체 홍보부스, 아시안 여성 정체성 독려 부스 등으로 채워졌다.     주최 측은 한인 최초 CNN 앵커를 지낸 메이 리를 사회자로 내세워 금융권과 뷰티 사업에서 성공한 중국계 2세인 에디 얭과 빅토리아 푸, 증오범죄 예방 활동을 펼치는 청소년 단체 AAPI 유스라이징의 한인 2세미나 페도라(14)를 패널로 한 ‘아시안 여성의 역할과 도전’ 간담회도 열었다.   간담회에서는 미국에서 살아가는 아시안 여성에 대한 선입견, 아시아계 가정이 여성에게 바라는 성역할 고정관념과 문제점, 직장 내 아시안 여성 차별과 대응 등을 다뤘다.     USC에서 아시안 아메리칸 저널리즘을 가르치는 메이 리 교수는 “아시안(여성)은 체구가 작고 소극적이라는 선입견 아래 차별과 증오의 대상이 되곤 한다”며 “한인 등 아시안 이민자가 이 나라에 ‘뿌리내린 역사’를 널리 알려야 한다. 한인사회도 개별적인 행동 대신 여러 커뮤니티와 함께 증오범죄에 맞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샌프란시스코 베이 지역은 중국계 커뮤니티의 단합과 네트워크 결속력이 강하다. 특히 중국계 커뮤니티는 지역사회 아시아계 ‘맏형’을 자처해 연대를 통한 아시아계 위상 강화를 꾀하고 있다.   중국계 1세대 단체는 내부 결속을 강화하고, 2~3세대는 아시아계 단체와 연대해 증오범죄 공동대응에 나서는 모습이다. AAS 측도 “아시안 커뮤니티 개개인의 힘을 합쳐 아시안 증오범죄와 부정적 선입견을 타파, 안전한 사회를 만들자”를 활동 목표로 내세우고 있다.     팬데믹 기간 아시안 증오범죄 문제가 계속되자 베이 지역 중국 커뮤니티는 AAS, CAA(Chinese for Affirmative Action), CWJ(Comfort Women Justice), PP(Pivot to Peace), RNRC(Rape of Nanking Redress Coalition), NLGSF(National Lawyer Guild San Francisco) 등 단체를 중심으로 인종차별과 증오범죄에 맞서고 있다.      샌프란시스코 차이나타운과 새크라멘토에 사무실을 둔 중국계 민권단체 CAA 홍보담당 신옌링은 “중국계 이민자 정착지원 및 시민권 취득을 돕는 일이 주된 업무지만 팬데믹 기간 반아시안 정서, 아시아계를 향한 잘못된 선입견 등과 싸우고 있다”며 “웹사이트를 통해 중국계 이민 역사 등도 알린다”고 말했다.     샌프란시스코한인회 김한일 회장은 “차이나타운에서 시니어가 폭행을 당하고, 백인과 흑인 주민이 중국계 등 아시아계에 ‘고백 투 유어 컨트리’라고 고함치면서 중국 커뮤니티와 이곳 아시아계가 받은 충격은 컸다”며 “베이 지역은 전통적으로 아시안 강세 지역이었다. 이런 일이 벌어지자 중국계 커뮤니티는 네트워크를 총동원해 2년 전 다운타운에서 열린 증오범죄 반대 행진에 5000명을 동원하기도 했다. 한인사회와 필리핀 커뮤니티 등도 중국 커뮤니티에 적극적으로 협력하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한편 연방 센서스에 따르면 샌프란시스코 대도심인 베이 지역은 9개 카운티에 걸쳐 775만명(2019년 기준)의 인구를 자랑한다. 이중 아시아계는 약 205만명으로 중국계 66만명(대만계 포함), 인도계 33만명, 필리핀계 32만명, 베트남계 17만명, 한인 10만명 순이다. 관련기사 110년 전 한인 가족이 증언한 ‘차별의 씨앗’ [아시안 증오범죄 예방 프로젝트] 괴롭힘 당할까 태권도 수강 청소년 ‘2배’ 글·사진=김형재 기자 kim.ian@koreadaily.com아시안 증오범죄 예방

2023-03-21

110년 전 한인 가족이 증언한 ‘차별의 씨앗’

“내가 아이다호에 9에이커 농장을 갖고 있단 말이오!”   1914년 3월12일 샌프란시스코 엔젤 아일랜드 이민국 센터. 이민심사국에서 남편 박경수씨는 치밀어오르는 화를 참지 못했다. 그는 20여일 전 한국을 떠나 천신만고 끝에 미국에 도착한 처자식을 마중나온 길이었다. 그는 가족상봉의 꿈에 부풀어 있었지만, 이민심사관은 단호했다. 그의 아내 임소사(영어명 안나), 첫째 딸 박경(영어명 완다), 아들 박동완(영어명 존), 세 살배기 막내딸 박영순(영어명 로즈)이 이민자 수용막사에 구금됐다고 했다. 구금 이유는 그들이 성인 남성과 동행하지 않았고, 돈도 없어서였다. 이민심사관은 남편 박씨에게 체류신분과 재정상태에 관한 40가지 질문을 쏟아냈다. 이들 가족은 박씨 농장이 있던 아이다호 마운틴홈 우체국장이 보낸 사실확인 전보를 받고서야 11일만에 풀려났다. 그나마도 딸 영순과 경 자매는 수용막사 옆 병원에서 구충과 홍역 치료를 받아야만 했다.   지난주 찾은 캘리포니아 주립공원 엔젤 아일랜드의 이민국 박물관(Angel Island Immigration Museum) 수용막사 1층 전시관에 소개된 한인 가족의 이민 기록이다.     샌프란스시코 베이 만에서 가장 큰 섬인 엔젤 아일랜드. 다운타운 페리빌딩(Ferry Building) B선착장과 북쪽 티뷰론(Tiburon) 선착장에서 골든게이트 여객선(오전 9시~오후 5시 사이 하루 4번 왕복)을 타면 30분 뒤 여의도만 한 섬의 아얄라코브 선착장에 도착한다. 선착장에 내리니 비가 내렸다. 섬에서 보이는 육지 티뷰론은 바로 눈앞이다. 선착장에서 포장길을 따라 동쪽으로 약 1.6마일을 걸으면 110년 전 원형을 보존한 이민국 박물관이 나타난다.     박물관 측에 따르면 연방정부는 1891년 이 섬에 외국 선박 검역소를 설치했다. 이후 이민국 센터를 1910년부터 1940년(본부건물 화재로 폐쇄)까지 운영했다. 태평양을 건너온 80개국 출신 이민자를 심사했다. 당시 나라 잃은 조선인(이하 한인), 중국인, 일본인 등이 미국 본토에 발을 딛기 위해서는 이곳을 반드시 통과해야 했다.   엔젤 아일랜드 이민국 센터는 1882년 미국 역사상 특정 인종과 국가 출신 이민을 최초로 금지한 ‘중국인 배제법(Chinese Exclusion Act,1943년 폐지)’을 효율적으로 시행한 곳이었다. 외모가 비슷한 아시아계도 같은 취급을 받았다.     박물관 측은 이민자들이 도착했던 선착장 부지에 거대한 대리석을 설치, ‘이곳은 환영 대신 차별과 배척의 상징이다. 중국인 배제법 시행으로 원치 않는 이민자들(undesirable groups)을 규제했다’고 영어와 한자로 각인했다. 박물관에 따르면 센터가 운영된 30년 동안 한인 1000명, 중국인 17만5000명, 일본인 11만7000명 등 이민자 40만 명 이상이 입국심사 과정에서 ‘강제구금(평균 7~14일, 최대 600일)’을 피하기 어려웠다. 일부는 추방당했다.       당시 이민국 센터 본부 건물은 불에 타 소실됐지만, 이민자 수용막사(Detention Barrack), 병원 등은 원형을 유지한 채 박물관으로 공개되고 있다.   2층 숙소 침상 한쪽은 한국(KOREA) 이민자의 공간으로 꾸며졌다. 이곳을 거쳐간 최경식(1925년) 등 유학생과 독립운동가, 사진신부, 노동자 등 한인 약 1000명을 기리는 장소다. 숙소 나무기둥에는 ‘류인발, 구월륙일’, 한글로 새긴 자국도 남아 있다.     그들이 남긴 옷가지와 이민가방 옆에는 1914년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이민국에 도착한 세 살배기 박영순과 가족의 사진도 컬러로 복원돼 있다. 천진난만한 꼬맹이 박영순과 달리 엄마 임소사와 언니는 긴장한 표정이 역력하다.     박씨의 아내 임소사씨는 “아이다호에서 남편의 농장을 같이 일구고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기 위해 미국에 왔다”고 했다. 오늘날 미국에 오는 우리 한인들과 같은 이유지만, 110년 전 한인 이민자는 멸시와 차별 등 부당한 대우를 당해야 했다.     뉴욕 허드슨강 하구 ‘엘리스섬 이민국’은 유럽계 이민자의 입국 관문이자 아메리칸드림의 상징이다. 반면 아시안 이민자의 입국 관문이던 ‘엔젤 아일랜드 이민국(Angel Island Immigration Center)’은 미국의 부끄러운 과거이자 꼭 기억해야 할 역사의 현장이다.       ━   알몸검사·600명 수용…입국부터 유럽계와 차별    강압적 절차로 아시안에 고통 이민센터 원형 보존 실상 고발  “부끄러운 이민역사도 알아야”     지금은 전시관으로 탈바꿈한 이민자 수용막사와 병원 건물은 엔젤 아일랜드 이민국 센터의 역사와 치부를 가감 없이 드러내고 있다.   옛 이민국 센터 부지 곳곳 시멘트 계단에는 ‘용기, 희생, 격리, 외로움, 용기, 좌절, 분노’ 등의 단어가 크게 새겨져 있다. 각인된 단어에서 왠지 모를 슬픔이 엿보인다.   ▶이민자 구금 현장 보존   100년이 넘은 이민국 센터 2층 목조형 수용막사는 외부를 둘러싼 철조망까지 그대로 남아 있다. 당시 1층은 아시안 남성용 숙소와 여성용 숙소, 2층은 중국인 남성 숙소와 인터내셔널(유럽계 포함) 남성 숙소로 운영했다고 한다. 여성용 숙소에는 3단 높이의 침상 60개, 남성용 숙소에는 3단 높이 침상 200개를 설치해 한 번에 최대 600명까지 수용했다고 한다.     원형 그대로 전시된 교실 1~2개만한 숙소와 3단 침상의 빽빽함은 당시 이민자가 겪었을 외로움, 좌절감, 두려움, 분노를 고스란히 느끼게 해준다.     박물관에 따르면 엔젤 아일랜드 이민국 센터에서는 동양인 외에도 ‘러시아, 벨기에, 프랑스, 이탈리아, 헝가리’ 등 유럽계 백인 이민자도 입국심사를 받았다. 하지만 유럽계 이민자는 수용막사 숙소도 별도, 전담의사와 병실도 따로 제공되는 등 아시아계와 분리돼 상대적으로 나은 처우를 받았다.     엔젤 아일랜드 이민국 센터의 이민자 심사와 취조는 악명이 높았다고 한다. 유럽계 이민자 환영정서와 달리 ‘태평양 연안 국가’ 출신 이민자(대부분 아시아계)는 최대한 입국을 허락하지 않겠다는 이민국 센터 목표가 뚜렷해서다.   안내를 맡은 자원봉사자 래리 리빙은 부끄러운 역사도 기억하고 깨우쳐야 달라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리빙은 당시 백인 중심의 아시안 노동자 혐오 정서를 잊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곳에 도착한 사람 모두 정말 오랜 시간 항해의 고통을 견뎌냈다”며 “하지만 백인들은 아시안 노동자가 저임금에도 열심히 일하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싫어했다”며 당시 사회 분위기를 전했다.     ▶아시안 이민자 아픔 기억해야   1910~1940년 사이 엔젤 아일랜드 이민국 센터에 도착한 한인과 중국인 등 이민자들은 일렬로 입국심사 본부로 향했다. 심사관들은 2~3일 동안 추방 꼬투리를 잡기 위해 최대 40가지 질문을 던졌다. 알몸을 강요당한 신체검사는 동양인 이민자를 경악하게 했다.     굴욕은 계속됐다. 이후 이들은 평균 7~14일 이상을 감옥 같은 수용막사와 건너편 병원에 감금당해야 했다. 신체검사 검역관은 한인 등 아시아계 몸에서 구충(십이지장충)과 홍역 감염을 문제 삼았다.     특히 감금 이민자의 70%는 중국인 이민자였다. 집중심사 대상인 이들은 최소 6일, 평균 2~3주, 최대 600일까지 구금됐다. 무일푼 중국인 이민자 약 18%는 입국이 거부된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인 이민자는 ‘황금산(Gold Mountain)’을 찾아왔다는 희망도 잠시, 기약 없는 감금 생활에 좌절했다. 이들은 슬픔과 분노의 심정을 나무막사 벽에 한 자 한 자 새겼다. 이들이 남긴 한시 200편은 수용막사에서 원형 그대로 볼 수 있다.   “우리는 하늘과 구름, 바다를 바라만 본다네/ 막사를 둘러싼 철조망은 우리를 갈라놓네-1939년 중국계 이민자 로웨.”     리빙은 미국 사회에서 반아시안 정서의 뿌리는 깊은 만큼, 모두가 ‘역사’를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아시안 차별과 증오 범죄를 생각하는 사람들은 이곳에 꼭 와서 우리가 무슨 짓을 했는지 역사를 배워야 한다”며 “그들은 가난하다는 이유로, 시민권자나 그 가족이 아니라는 이유로 이곳에 감금됐다. 우리 모두 이민자의 후손이라는 사실을 안다면 인종과 피부색, 성을 이유로 ‘구별짓는 일’이 부끄럽다는 사실을 알 것”이라며 성찰을 거듭 당부했다.     엔젤 아일랜드는 미국이 자랑하는 ‘아메리칸 드림’의 진정한 의미를 묻고 있다.   한편 엔젤 아일랜드 이민국 센터를 거쳐 간 이민자 이야기는 중국계 이민자 후손 에리카 리 교수(미네소타 대학)와 주디 융 교수(UC샌타크루즈) 저서 ‘엔젤 아일랜드(Angel Island)’와 엔젤 아일랜드 이민국 재단 웹사이트(www.aiisf.org/immigrant-voices)를 통해 더 자세히 알 수 있다. 엔젤 아일랜드웹사이트는 www.angelisland.com. 관련기사 [아시안 증오범죄 예방 프로젝트] 괴롭힘 당할까 태권도 수강 청소년 ‘2배’ 김형재 기자 kim.ian@koreadaily.com아시안 증오범죄 예방

2023-03-20

[아시안 증오범죄 예방 프로젝트] 괴롭힘 당할까 태권도 수강 청소년 ‘2배’

수요일이던 지난달 14일 오후 2시, 플로리다주 올랜도 시청 앞.   쨍한 햇빛과 서늘한 바람이 감도는 날씨에 야외에서 커피를 즐기는 직장인들이 눈에 띈다.     평일 오후 시간인 걸 고려해도 거리는 한산하기 그지없다. 경적과 사람들의 발길로 붐비는 LA다운타운과는 달리 느긋하고 평화로워 보이기까지 한다.     1시간여를 걷는 동안  5명 남짓한 홈리스들과 마주쳤다. 동냥하는 팻말만 없으면 홈리스인 줄 모를 만큼 행색이 말쑥한 편이다.     아시안 여성으로 홀로 다운타운 길거리를 걷는데 긴장감이 없다는 사실이 낯설다.   시청에서 북쪽으로 걸어 15분쯤 떨어진 카페 ‘크래프트 앤 커먼’을 들려 음료 한잔을 주문했다.     계산하는데 흑인 직원이 갑자기 “어디서 왔냐?”고 물었다.     순간 신경이 곤두섰다. 흔한 인종차별 레퍼토리인데 라는 생각이 스치는 찰나였다.     약간 긴장하며 LA에서 왔는데 왜 그러냐고 묻자 ‘지크’라고 자신을 소개한 그는 “한국에 유학을 다녀온 적이 있는데 이름이 한국 사람이라 반가웠다”고 말했다.   ‘아차’ 싶은 마음과 함께 한편으로는 안도감이 들었다.     ‘이곳엔 한인들이 많이 없냐’고 묻자 지크는 “베트남 커뮤니티가 이 근처라 베트남계는 좀 있지만 한인들이나 그 외 아시안들은 잘 보지 못한다”며 “한인 마켓에 가면 그래도 많이들 있을 것”이라고 알려줬다.     2020 센서스에 따르면 플로리다주 내 아시안은 3%(59만668명)에 불과하다.     기자가 방문한 올랜도는 플로리다주에서 알라추아카운티 다음으로 아시안이 2번째로 많다는 오렌지 카운티에 속해있는 도시임에도 거리에서 아시안을 보기란 쉽지 않았다.       다운타운을 벗어나 17번 하이웨이를 타고 서쪽으로 10분 남짓 달려간 곳엔 대형 한인 마켓 ‘롯데 플라자 마켓’이 있다. 올랜도에 한인 마켓은 이곳과 ‘우성식품’ 2곳이 전부다. 심지어 롯데 마켓은 비교적 최근인 지난 2019년 문을 열었다. 널찍한 매장 안에는 밖에서는 자주 보지 못했던 한인뿐만 아니라 중국계, 베트남계 등 아시안들이 장을 보고 있었다.     조지아주에 30년을 살고 플로리다에 온 지 4년째라는 케니 김 마켓 매니저는 “이곳 아시안들은 경제적으로 중상위가 많고 이민 역사가 길어 이미 3세, 4세대 자녀들이 주류사회 각계에 진출해 뿌리가 깊게 내려져 있다”며 “물론 인종차별이 없지 않지만, 나이 많은 은퇴자들이 많고 다같이 어우러지는 분위기다”고 설명했다.     민간 연구기관 ‘인구참조국(PRB)’에 따르면 전국에서 규모 3위인 플로리다 인구 약 2100만명 중 65세 이상은 460만명(21%)이다. 전체 인구 5명 중 1명은 은퇴자인 셈이다. 플로리다 별명 중 하나가 ‘은퇴자들의 천국’인 이유다.     인구 중 나이가 많은 주민들의 비율이 높고, 아시안은 적다 보니 당연히 인종 편견에 기반을 둔 사건·사고들이 쉽게 보이진 않는다.     탬파에서 20년째 거주 중인 한재덕(55·의류 소매업)씨는 “영어를 잘 못 하면 좀 무시하는 것 정도. 이게 ‘인종차별’인가 하는 경우는 종종 있었지만 큰 피해를 본 적은 없다”며 “평화로운 동네이기도 하고 아시안들이 피해 사실을 공공연하게 잘 말하지도 않는다”고 말했다.   하지만 실생활에서 자주 체감되지 않을 뿐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플로리다주에 드물지 않게 나타나고 있는 ‘아시안 증오범죄’는 경각심을 깨우고 있다.     ━   증오사건 신고 비영리단체 260건, 경찰 1건     지난해 한인 의사 폭행 피해 관할 영사관 “증오범죄 증가” 인종차별 대처법 교육 시급    지난해 9월에는 한국 대학병원에서 콘퍼런스 참석차 마이애미를 방문한 한국 의사 지모씨가 기차 안에서 흑인 남성에게 무차별 폭행을 당하는 사건이 있었다.     플로리다주를 관할하는 애틀랜타 총영사관에 사건·사고 담당협력관으로 활동 중인 임창현 ‘코리아 태권도장’ 관장은 “당시 피해자는 안경이 깨지고 광대뼈가 골절되는 등 심한 부상을 입고 병원으로 이송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사건·사고가 자주 있지는 않지만 팬데믹 이후로 늘었다”며 “팬데믹 이후로 사람들이 더 예민해졌고 인종차별은 더 늘어난 것이 사실”이라고 전했다.     비영리단체 ‘Stop AAPI Hate’가 지난 7월 발표한 전국 보고서에서 팬데믹이 시작된 지난 2020년 3월 19일부터 2022년 3월 31일까지 약 2년간 아시안 ‘증오사건’(hate incidents) 신고를 취합한 결과, 플로리다주에서는 240건이 신고돼 전국에서 9위를 기록했다. 신고가 가장 많았던 곳은 캘리포니아로, 플로리다주에 18배에 달하는 4333건이 신고됐다. 〈표 참조〉     이런 계기로 태권도장에는 팬데믹 이전 초등학생들과 30~40대 성인이 다수였지만 팬데믹 이후 중고등학생의 비율이 2배 가까이 늘었다고 임 관장은 전했다.   그는 “아시안 학생들이 학교에서 ‘너희 나라로 돌아가라’는 말과 함께 괴롭힘을 당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설명하며 “예전엔 구기 종목 수요가 많았는데 학생들이 종합 마샬아트를 호신용으로 배우려는 학생들이 많다”고 말했다.     다양한 유색인종이 살며 인종 간의 화합이 늘 화두인 캘리포니아와 비교해 수적으로 한인들이 극히 열세하다 보니 증오범죄는 물론 인종차별은 이슈가 크게 안 되는 모습이다.   특히 ‘조용한 게 미덕이다’는 한인들의 문화적 특성상 피해를 보고도 감추기 일쑤고, 적은 인구 규모에 따른 사회적, 정책적 지원 시스템 부족은 이를 더 부추기고 있다는 게 전문가의 의견이다.       사우스플로리다대학교(USF) 사회복지학과 박난숙 교수는 “한인들이 많아 사회적 지원이 탄탄한 LA와 달리 그런 시스템이 구축돼있지 않고, 아시안들을 모범 소수민족(Model Minority)으로서 인식이 있어 도움이 필요하지 않은 그룹으로 여겨지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미묘한 공격성(micro aggression)을 띠는 인종차별의 경우 교육과 대처 훈련을 받은 적이 없기 때문에 판단이 잘 안 돼 그냥 참고 넘어가는 한인들이 대다수다”라며 실제 사건보다 신고율이 저조할 것으로 예상했다.   실제로 플로리다의 공기관이 취합한 데이터는 ‘Stop AAPI Hate’가 취합한 결과와 거리감을 보인다.   지난 2021년 플로리다 법집행기관 757개 중 단 2곳만 연방수사국(FBI)에 증오범죄 데이터를 제출했으며 아시안 증오범죄를 포함해 전체 증오범죄는 단 1건에 불과했다.     올랜도 지역 매체 ‘뉴스6’도 지난해 5월 13일 자 방송에서 “플로리다 아시아계 미국인들을 대상으로 한 증오 사건들이 늘고 있다”며 사례들을 인용해 보도하면서 비영리단체와 공기관에서 취합한 결과가 크게 차이를 보이는 점을 지적했다.     ━   “수사관이 휴대폰 번호 주며 신고 당부”                 신광수 서부플로리다 회장 아시아계 최초 세미나 개최   아시안 증오범죄에 대한 경각심이 높았던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플로리다주에서 ‘아시안 증오 범죄 예방 세미나’를 최초로 개최한 곳은 다름 아닌 한인사회였다. 다른 아시안 커뮤니티보다 앞섰던 한인사회의 중심에는 서부플로리다한인회(회장 신광수·이하 한인회·사진)가 있었다.     한인회는 아시안 증오범죄 예방교육과 대응법 안내에 소극적이었던 당시 플로리다 상황을 우려해 지난 2021년 9월 증오범죄 세미나를 개최했다.   주에서 한인이 가장 많이 거주하는 탬파 지역을 포함해 13개 카운티를 담당하는 서부플로리다한인회는 최근 새로운 한인회장이 부임하면서 다양한 커뮤니티 행사와 서비스 지원 등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본지는 지난달 13일 탬파 지역 한 카페에서 신광수(55·사진) 제31대 한인회장을 만났다.     -한인회를 소개한다면.     “지난 1974년 설립된 서부플로리다한인회는 당시 회장단과 이사진이 4명에 불과했지만, 현재 22명으로 늘어났다. 개인적으로는 지난 2005년부터 봉사를 이어오다 지난 2021년 6월에 회장으로 취임했다. 그해 임원 및 이사들과 함께 아시안 혐오 범죄 예방 세미나를 비롯해 제1회 탬파 베이 오픈 오렌지 컵 골프대회, 제1회 노래경연대회 ‘K 보이스 플로리다’를 개최해 큰 호응을 얻었다. 지난해 4월에는 미주지역 한인회 최초로 순회 영사예약제를 시행했으며 9월에는 태풍 이안에 대한 대피 통보와 각종 정보를 공유하며 지역 한인들의 인명피해를 예방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아시안 증오범죄 세미나 어떻게 개최하게 됐나.     “2021년 3월 애틀랜타 총격 사건 후 사회적으로 긴장감이 높아져 필요성이 제기됐다. 일단 가장 먼저 증오범죄 대응법과 신고 방법 등을 교육해야 한다고 생각해 탬파 지역을 관할하는 힐스버러 카운티 셰리프쪽에 연락을 취했는데 흔쾌히 해주겠다고 답했다. 그렇지 않아도 아시안의 목소리가 필요했다며 아시안 커뮤니티 중에서는 한인사회가 처음으로 요청한 거라고 전해왔다.”     -한인들의 반응은 어땠나.   “한인단체장과 교회 리더 등 40명을 초청해 세미나를 실시했는데 이런 행사는 한인사회 내에서도 처음이라며 도움이 많이 됐다고 전했다. 당시 강사로 온 존 맥다비 아시안 담당 수사관은 자신의 사무실과 개인 셀폰 번호까지 주며 ‘9·11처럼 생각하고 연락하라’고 전했다. 수사관은 인종차별 범죄가 기승을 부리는 것을 알고 있지만 신고가 적어 수사의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전하며 협조를 당부했다.”     -플로리다 주류사회와 한인사회 관계는 어떤가.     “한인사회 목소리가 워낙 저조하기 때문에 정치인 사무실 쪽에서 직접 연락이 와서 상황이 어떤지 물어보기도 하고, 공공기관에서는 정치적 자문기구를 만들어 목소리를 내달라고 권유한다. 사실 유권자 비율로 봤을 때 한인 비율은 0.1% 정도에 불과할 텐데 목소리를 들어주려고 노력하는 게 고맙다.”     -앞으로 한인회가 추구할 방향은.   “전문가를 초빙해 주택 모기지 및 각종 세금 납부 방법, 각종 정부 혜택 등 한인들의 미국 생활에 필요한 실질적인 정보를 제공하는 자리를 마련할 예정이다. 또한 고학력/전문직에 화려한 과거를 자랑하면서도 외로움을 어찌할 수 없어 힘들어하는 한인 은퇴자분들이 많다. 이들을 위해 함께 인근에 거주하며 황혼을 함께 즐길 수 있는 ‘한인 우정 공동체’ 프로젝트를 기획 중이다.”   장수아 기자아시안 증오범죄 예방

2023-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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